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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봉 영화 마루타 오리지널 리뷰 (역사 고증, 프로파간다, 완성도)

by 짙은눈썹 2026. 4. 29.

1993년도 개봉 영화 <The Devil 731>

2026년 05.06 재개봉을 하였다.

재개봉명 "마루타 디 오리지널:사망열차"

 

역사 영화가 잔혹한 실화를 다룰수록 더 좋은 작품이 될까요? 저는 처음 이 영화를 접하고 나서 그 질문에 선뜻 "그렇다"라고 답하지 못했습니다. 일제 관동군 방역 급수부 731 부대를 소재로 한 영화 <731>이 1월 21일 국내 개봉했고, 중국 본토에서 이미 큰 흥행을 거둔 작품이라는 점에서 기대 반 우려 반으로 감상했습니다.

마루타 디 오리지널 포스터

731 부대, 역사적 고증은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까

영화 <731>을 연출한 자인상 감독은 10년 이상 자료를 수집하며 역사적 고증에 공을 들였다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영화를 보면 몇 가지 장면이 눈에 띕니다. 일반적으로 포로수용소라고 하면 열악한 환경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여기서 마루타(丸太)란 731 부대에서 인체 실험 대상자를 가리키던 은어로, 말 그대로 인간을 '통나무'처럼 소모품 취급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실제 역사 기록에 따르면 731 부대의 수용 시설은 정밀한 실험 데이터 확보를 위해 마루타들에게 고단백 식사를 제공하고, 1940년대에는 보기 드문 수세식 화장실과 환기 시설까지 갖췄다고 전해집니다. 영화가 깔끔한 수용 시설을 묘사한 것이 단순한 미화가 아니라 이 고증을 따른 것이라면, 오히려 그 서늘함이 훨씬 증폭되어야 정상입니다.

세균전(細菌戰)이라는 개념도 영화의 핵심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세균전이란 병원성 미생물이나 독소를 무기로 활용해 적군 혹은 민간인에게 감염병을 퍼뜨리는 전쟁 방식을 말합니다. 이시이 시로 중장이 뉴욕과 모스크바를 향한 세균 폭탄 투하 작전, 이른바 '밤에 벚꽃 작전'을 구상했다는 설정은 실제 역사에 기반한 부분입니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는 731 부대의 세균전 연구가 제2차 세계대전 중 자행된 가장 광범위한 생물학전 범죄 중 하나라고 평가한 바 있습니다(출처: 국제적십자위원회).

과거 <흑태양 731>을 어릴 때 처음 봤을 때 그 충격은 쉽게 잊히지 않았습니다. 당시엔 화면을 제대로 쳐다보기도 힘들었는데, 그 충격의 핵심은 고어 장면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실제로 벌어진 일이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고증을 철저히 살렸다는 영화 <731>이 그 무게를 제대로 담아냈는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프로파간다 영화인가, 역사 고발 영화인가

제가 이 영화를 보고 가장 의아했던 점은 정체성이 불분명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중국에서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나뉩니다.

  • 주선율(主旋律) 영화: 중국 공산당의 정치 이념과 애국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는 국책 영화로, 흔히 '중뽕 액션 블록버스터'로 불린다.
  • 역사 고발 영화: 피해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재현하며 관객의 역사 인식과 반성을 촉구하는 방향을 취한다.

여기서 주선율이란 중국어로 '주된 선율'을 뜻하며, 공산당의 공식 이데올로기를 선전하는 목적으로 제작되는 영화 장르를 가리킵니다. <731>은 그 어느 쪽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에 서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일본의 악행을 정면으로 고발하지도 않고, 중국 영웅의 활약을 중심으로 서사를 끌어가지도 않습니다.

실제로 영화 전반부는 주인공 왕용장이 일본군 장교 이마무라에게 굽신거리다가 한 번씩 반항하고 혼나는 장면이 반복됩니다. 솔직히 이 부분에서 저는 영화가 731 부대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그러다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생체 실험 장면들이 몰아서 등장하는데, 마치 벼락치기하는 것처럼 갑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이 구성이 감독의 의도적인 선택이었는지 아니면 편집의 실패인지 분명히 알 수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관객이 그 공포에 충분히 감응할 시간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한국 영화 <군함도>와 묘하게 닮은 구석도 있었습니다. <군함도>의 주인공이 악단장이었던 것처럼 <731>에서도 재주를 부리는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탈출 과정의 구조도 유사합니다. 표절 의혹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단정하기보다는 의심스러운 수준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다만 어느 쪽이든 결과적으로 서사의 독창성이 부족하다는 인상은 지우기 어려웠습니다.

역사 고증의 관점에서도 아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영화에서 러시아 소녀가 소련 군가인 '성스러운 전쟁'을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곡은 독소 전쟁(獨蘇戰爭) 초기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독소 전쟁이란 1941년부터 1945년까지 나치 독일과 소련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을 가리키며, 영화의 배경인 1945년 만주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는 맥락이라 이 장면은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줬습니다. 역사적 사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관객이라면 저처럼 고개를 갸웃하게 될 부분입니다.

이 영화를 봐야 할까, 말아야 할까

제가 직접 보고 내린 결론은 명확합니다. 권유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731 부대의 역사를 다룬 매체들은 이전에도 존재했고, 각각 접근 방식이 달랐습니다. 저는 아래 작품들을 <731>의 대안으로 보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 흑태양 731: 잔혹한 장면 묘사로 논란이 있었지만 적어도 '이 사건을 왜 다뤄야 하는가'에 대한 의식이 느껴진다.
  • 여명의 눈동자: 731 부대가 등장하는 한국 드라마로, 피해자와 가해자의 인간적인 면모를 함께 담아낸 작품이다.
  • 정현농가의 마루타: 역사 고증이 완벽하진 않지만 영화적 완성도 면에서 <731>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는다.

역사 영화의 사회적 영향력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섭니다. 미국 홀로코스트 박물관(USHMM)의 연구에 따르면, 역사적 비극을 다룬 영화는 관객의 역사 인식과 공감 능력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미국 홀로코스트 박물관). 그렇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그 역사를 재현하느냐는 단순한 예술적 선택이 아니라 윤리적 문제가 됩니다. <731>이 중국에서 흥행하며 반일 감정을 자극하는 도구로 소비된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저는 이 영화가 역사를 기억하는 올바른 방식을 택했는지에 대해 여전히 회의적입니다.

결국 731 부대의 비극은 특정 국가의 증오를 부추기는 소재로 쓰이기엔 너무 무거운 실제 역사입니다. 제 경험상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고 싶다면, 자극적인 영상보다 기록과 증언에 더 가까운 자료에서 시작하는 편이 훨씬 나았습니다. 이 영화를 볼까 고민 중이라면 위에 언급한 다른 작품들을 먼저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youtu.be/dSCYQId-77k? si=8 VodcOs9 KnHXnvN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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