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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존윅4"리뷰 (마지막 혈투, 시각적 성전, 모호한 죽음)

by 짙은눈썹 2026. 5. 29.

끝없는 피의 연대기를 매듭짓기 위한 거장과 배우의 위대한 여정

한 세계관이 십 년 가까운 세월 동안 관객들의 심장을 뛰게 만들고, 마침내 그 거대한 서사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 돌아왔을 때의 중량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은 단순히 고난도의 스턴트를 나열하는 수준을 넘어, 이번 작품을 통해 '존 윅'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신화이자 개념을 어떻게 해체하고 안식으로 인도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사색을 보여준다. 영화가 대중에게 던진 화두는 명확하다. 온 우주가 그를 옥죄고 파멸시키려 할 때, 한 개인이 움켜쥘 수 있는 온전한 자유의 크기는 과연 얼마만큼인가 하는 점이다. 감독은 거대하고 관료주의적인 최고회의라는 시스템에 정면으로 균열을 내며, 단순한 오락 영화를 넘어 장엄한 현대판 그리스 비극의 한 장을 완성해 냈다.

영화 "존윅4"포스터

마지막 혈투:최고회의의 거대한 압박에 맞선 자유

뉴욕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사내는 지하 세계의 거물 바워리 킹의 비호 아래 만신창이가 된 육체를 일으켜 세우며 복수의 칼날을 간다. 사막으로 한걸음에 달려가 최고회의의 수장인 장로를 처단하지만, 그것은 평화의 시작이 아닌 더 거대한 파멸의 서막이었다. 최고회의는 빈센트 드 그라몽 후작에게 전권을 위임해 존 윅을 도왔던 모든 흔적을 지우기 시작한다. 그 대가로 뉴욕 컨티넨탈 호텔은 폭파되고, 오랜 시간 존의 곁을 지킨 카론은 차가운 시신이 된다. 후작은 존의 오랜 친구이자 맹인 암살자인 케인을 인질로 잡아 존의 목을 죄어오고, 존은 자신을 숨겨준 오사카 컨티넨탈의 시마즈 코지와 그의 딸 아키라가 있는 일본으로 향한다. 하지만 최고회의의 무자비한 습격으로 코지는 케인의 손에 목숨을 잃고, 아키라는 비극적인 복수의 굴레에 서게 된다. 벼랑 끝에 선 존에게 윈스턴은 최고회의의 오랜 전통인 단 한 번의 결투를 통해 완전한 자유를 쟁취할 수 있는 돌파구를 제시한다. 패밀리인 루스카 로마의 일원으로 복권되기 위해 베를린에서 잔혹한 킬라 하르칸을 처단한 존은 마침내 그라몽 후작과의 결투 권리를 얻어낸다. 파리의 어둠 속에서 수백 명의 암살자와 현상금 사냥꾼 미스터 노바디의 추격을 뚫고, 케인의 가슴 아픈 조력을 받으며 사크레쾨르 대성당의 계단을 오르는 존의 발걸음은 그 자체로 처절한 서사시가 된다. 마지막 일출과 함께 시작된 결투에서 존은 오만한 후작의 머리에 최후의 탄환을 박아 넣으며 기나긴 피의 연대기를 매듭짓는다.

시각적 성전:온몸을 전율케 하는 감각적인 미학

늦은 밤, 방 안의 불을 모두 끄고 이 거대한 텍스트를 마주했을 때 밀려온 시각적, 청각적 충격은 단순한 영화 관람을 넘어 일종의 종교적 체험에 가까웠다. 오사카 컨티넨탈 호텔의 벚꽃과 어우러진 네온 블루와 크림슨 레드의 감각적인 조명 대비는 화면 가득 이국적이면서도 잔혹한 미학을 뿜어냈다. 무엇보다 베를린 클럽의 거대한 인공 폭포 아래에서 일렉트로닉 비트에 맞춰 펼쳐진 격투는 가쁜 숨소리와 클럽 음악이 절묘하게 교차하며 심장 박동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파리 개선문 로터리에서 달리는 차들 사이로 거침없이 몸을 던지며 권총을 난사하는 카체이싱 액션은 그 정교한 디자인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특히 한 폐가에서 펼쳐진 탑다운 뷰 시퀀스는 압권이었다. 천장을 배제한 채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구도로, 드래곤 브레스 산탄총의 불꽃이 어둠을 가를 때마다 스크린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각적 쾌감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 화려한 기술적 성취보다 내 마음을 가장 깊게 울린 것은 키아누 리브스의 눈빛이었다. 대사 한마디 없이 오직 거친 숨소리와 상처 입은 몸짓만으로 세상을 등진 사내의 고독을 완벽하게 재현해 냈다. 몽마르트르의 222개 계단을 구르고 굴러 떨어지면서도 다시 기어오르는 그의 처절한 몸부림을 보았을 때는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결투 직전, 친구인 케인과 마주 보며 짧은 격려의 무언극을 나눌 때 흐르던 서늘한 긴장감과, 마지막 탄환을 날린 후 성당 계단에 기대어 아내의 이름을 부르며 해돋이를 바라보던 존의 평온한 얼굴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방 안의 공기를 무겁게 채우는 잔향으로 남았다.

모호한 죽음:자유를 얻은 영웅의 안식

이 영화가 도달한 장르적 완성도와 미학적 쾌감은 경이롭지만, 이성적인 평론가의 시선으로 서사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깊은 사유를 요구하는 날카로운 질문들이 고개를 든다. 가장 먼저 시선이 머무는 곳은 존 윅의 죽음을 처리하는 방식의 모호함이다. 영화는 그의 묘비를 보여주며 영원한 안식을 선언하는 듯하지만, 그의 본명인 조나단 대신 통용되던 가명인 '존 윅'이 새겨진 묘비와 윈스턴, 바워리 킹의 의미심장한 태도는 이것이 시스템의 눈을 속이기 위한 거대한 가묘일 수 있다는 강한 의구심을 남긴다. 이러한 열린 결말은 팬들에게 속편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죽음을 통해서만 완전한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시리즈 고유의 철학적 주제의식을 다소 희석시키는 서사적 편리주의로 다가오기도 한다. 또한, 후반부 파리 시내에서 끝없이 밀려드는 수많은 암살자들과의 전투는 지나치게 반복적이어서 마치 비디오 게임의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듯한 피로감을 주며, 인물이 가진 내면의 비장미를 일시적으로 소모적인 액션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아쉬움을 남긴다. 무엇보다 쿠키 영상에서 드러나는 아키라와 케인의 비극은 이 영화가 가진 가장 잔혹한 시사점이다. 존 윅은 최고회의의 쇠사슬을 끊어내고 자유를 얻었을지언정, 그가 지나온 자리에는 또 다른 복수와 증오의 씨앗이 자라나 끊임없이 새로운 희생자를 양산한다는 점이다. 결국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부르고, 시스템에서 벗어났다고 믿는 순간조차 거대한 운명의 수레바퀴 속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 차가운 현실은 우리로 하여금 복수의 허무함과 구조적 폭력의 굴레를 깊이 반추하게 만든다.

상실의 슬픔으로 시작해 시스템의 파괴로 끝을 맺은 이 장대한 여정은, 현대 사회라는 거대한 조직 안에서 우리 각자가 지켜내야 할 인간다운 삶의 조건과 존엄성이 무엇인지 묵직하게 되묻는다. 영혼을 잠식하는 불합리한 굴레에 맞서 나만의 안식처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리고 장르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시각적 예술의 정점을 목격하고 싶은 관객들에게 이 기념비적인 작품은 가슴 깊이 남을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영화 "존윅 4"를 마지막으로 공식적인 존윅 시리즈는 끝이다.

주연을 맡은 키아누리브스도 인터뷰를 통해 존윅은 죽었다.라는 인터뷰를 한 것으로 나오지만, 팬의 입장에서는 아쉬움과 또 다른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다.

  • 출처: 나무위키 (https://namu.wiki/w/%EC% A1% B4%20% EC% 9C%85%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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