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피어난 새로운 액션 패러다임의 서막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역사는 이 작품의 등장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트릭스 트릴로지를 포함한 수많은 명작에서 스턴트 코디네이터로 활약하며 누구보다 몸의 언어를 잘 이해했던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은 자신의 첫 장편 연출작을 통해 투박하면서도 화려한 고유의 누아르 미학을 완성해 냈다. 이 영화가 대중에게 던진 첫 화두는 단순히 화려한 볼거리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한 인간이 가진 가장 소중한 세계가 무너졌을 때, 그 깊은 슬픔이 어디까지 잔혹한 파괴력으로 변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묵직한 탐구였다.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이 판치는 현대 영화계에서 감독은 인물의 날 것 그대로의 움직임과 긴 호흡의 롱테이크를 결합하여 스크린 위에 독창적이고 차가운 어둠의 세계관을 창조해 냈다.

상실의 파편
어둠의 세계에서 전설적인 킬러로 통하던 한 남자가 있었다. 비정하고 차가운 암살자의 삶을 살던 존 윅은 자신을 온전히 구원해 준 유일한 존재인 아내 헬렌을 만나면서 모든 과거를 묻고 평범한 삶을 선택한다. 그러나 잔인한 운명은 그에게 긴 평화를 허락하지 않았고, 아내는 깊은 병환으로 그의 곁을 먼저 떠나고 만다. 홀로 남겨진 슬픔 속에서 방황하던 존에게 아내가 남긴 마지막 선물인 어린 강아지 데이지가 배달되면서, 그는 차츰 상실의 아픔을 치유하며 새로운 삶의 희망을 발견해 나간다. 하지만 이 소박한 구원의 세계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우연히 주유소에서 마주친 러시아 마피아 보스의 철부지 아들 요제프 타라소프는 존의 클래식 머스탱 차량을 탐내며 무례하게 접근하고, 존의 차가운 거절에 앙심을 품은 요제프 일당은 야심한 밤 존의 집을 습격한다. 그들은 존을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차량을 훔치는 것도 모자라, 아내의 분신과도 같았던 데이지를 무참히 살해한다. 이 무모한 행동이 어떤 재앙을 불러올지 그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정신을 차린 존은 피로 물든 바닥에서 아내의 마지막 흔적이 완전히 지워졌음을 깨닫고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인다. 그는 지하실 콘크리트 바닥을 망치로 부수고 깊숙이 파묻어 두었던 총기와 부를 상징하는 금화 가방을 다시 꺼내 들며 전설의 귀환을 알린다. 아들의 엄청난 악행을 전해 들은 마피아 보스 비고 타라소프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수습하려 하지만, 이미 불붙은 존의 복수심은 마피아 조직 전체를 집어삼키기 시작한다.
복수의 여정
어두운 방 안에서 이 작품을 마주했을 때 전해진 시각적, 청각적 충격은 여전히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만신창이가 된 채 차에서 내려 아내와의 행복했던 영상을 바라보는 존 윅의 공허한 눈빛을 보았을 때, 가슴 한구석이 짓눌리는 듯한 먹먹함을 느꼈다. 특히 비글 강아지가 낑낑거리며 침대로 올라와 그의 얼굴을 핥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지만, 이내 들이닥친 어둠 속에서 들려온 둔탁한 타격음과 가냘픈 신음 소리에 주먹을 불끈 쥐며 숨을 죽여야만 했다. 가장 압도적이었던 순간은 단연 클럽 레드 서클에서의 총격전이었다. 쿵쾅거리는 비트가 심장을 때리는 클럽 음악 속에서, 푸른빛과 붉은빛이 묘하게 교차하는 네온 조명 아래 펼쳐지는 액션은 흡사 잔혹하면서도 아름다운 독무를 보는 것 같았다. 권총을 마치 신체의 일부처럼 자유자재로 다루며 근접 격투와 사격을 결합한 이른바 '건푸' 액션이 펼쳐질 때마다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탄창이 빌 때마다 들리는 거친 금속성 재장전 소리와 존 윅의 가쁜 숨소리는 단순한 오락 영화를 넘어 현장의 긴장감을 고스란히 안방까지 배달해 주었다. 키아누 리브스의 절제된 표정 연기와 그 너머로 이따금씩 이성을 잃고 폭발하는 살기 어린 눈빛은 극의 몰입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비고의 부하들과 성당 지하실에서 마주해 모든 재산을 불태우며 쏟아내는 분노의 일갈은 그가 왜 이토록 잔인해져야만 했는지를 웅변하며 보는 이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상처 입은 몸을 이끌고 유기견 보호소에서 새로운 동반자를 만나 밤거리를 걸어가는 마지막 장면을 볼 때는 비로소 참았던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순간까지도 묵직한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잔혹한 액션의 미학
이 영화가 선사하는 세계관의 독창성과 시각적 쾌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이성적인 시선으로 서사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몇 가지 날카로운 질문과 아쉬운 대목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만악의 근원이 되는 인물인 요제프 타라소프의 캐릭터 조형이다. 그는 거대 마피아 조직의 후계자임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누구인지 최소한의 확인도 없이 날뛰는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전형적인 철부지 악당에 머물러 있어 극의 개연성을 다소 떨어뜨린다. 또한, 아내를 잃고 슬픔에 잠겨 있던 평범한 남자가 단 한 번의 습격으로 인해 한순간에 수십 명을 망설임 없이 사살하는 냉혹한 파괴신으로 돌변하는 과정은 심리적 인과관계의 묘사보다 액션의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한 서사적 생략에 가깝다. 고작 개 한 마리와 차 한 대 때문에 도시 전체를 피바다로 만드는 설정은 블랙 코미디적인 속성을 지니면서도, 한편으로는 생명의 가치나 복수의 허무함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지나치게 가볍게 소비하는 것 아닌가 하는 비판적 시선을 던지게 만든다. 후반부 비고와의 최후의 결전 역시 아쉽다. 앞서 전반부와 중반부에서 보여준 고도의 전술적이고 세련된 총격전에 비해, 마지막 싸움이 다소 투박하고 전형적인 맨몸 육탄전으로 급격히 선회하면서 작품이 자랑하던 특유의 긴장감 넘치는 텐션이 다소 헐거워지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서사적 약점들을 매력적인 컨티넨탈 호텔이라는 킬러들만의 독특한 규칙과 정교한 액션 디자인으로 완전히 상쇄시켰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장르적 가치는 여전히 높게 평가받을 만하다.
상실이라는 인간 본연의 슬픔을 가장 파괴적이고 감각적인 방식으로 풀어낸 이 영화는, 겉보기엔 단순한 오락 영화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인간이 삶을 지속하기 위해 붙잡고자 하는 마지막 희망의 끈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내포하고 있다. 소중한 존재를 잃어버린 채 삶의 방향성을 상실하고 방황하는 이들에게, 혹은 정교하고 날 것 그대로의 정통 액션이 주는 진정한 장르적 쾌감을 맛보고 싶은 영화 팬들에게 이 작품은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충분한 최고의 선택지가 될 것이다.
영화 "존윅"은 시리즈로 만들어졌다.
내용은 2015년 작품으로 이후 2편, 3편, 4편으로 영화가 제작이 되었으며, 그 후 새로운 배우의 영화도 제작이 되었는데, 시리즈 형식으로 리뷰를 작성해 나갈 예정이다.
화려한 액션으로 눈을 즐겁게 하던 영화 "존윅"시리즈.
키아노리부스의 나이가 들 수록 더 농후하고 다양한 영화에서 배우의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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