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영화 "원더"가 2025년 재개봉을 하였다.
R.J. 팔라시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가족 드라마다.
세상의 편견을 마주한 한 소년과 그의 가족,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영화다.
주인공 어기 풀먼은 선척적 안면 기형을 가지고 태어나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홈스쿨링을 해오던 그는 5학년이 되면서 처음으로 학교에 가게 되는데, 새로운 환경에서 친구들을 사귀고 싶지만, 아이들의 시선과
편견은 어기에게 쉽지 않은 현실을 안겨줍니다.
다행히 어기는 자신의 자리에서 조금씩 용기를 내고, 다정한 가족과 몇몇 친구들의 도움 속에서 세상과 한 걸음씩 가까워지기
시작합니다.

헬멧- 우주를 꿈꾸던 소년, 지구라는 궤도에 조심스레 착륙하다
누군가에게는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일상이, 어떤 이에게는 헬멧을 쓰고 미지의 우주로 뛰어드는 것만큼이나 거대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모험이 되기도 한다. 스티븐 크보스키 감독이 섬세한 연출력으로 빚어낸 이 작품은 R.J. 팔라시오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스크린으로 옮겨오며 우리에게 다정함의 위력이라는 깊은 화두를 던진다. 안면기형장애라는 무겁고 예민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영화는 결코 값싼 동정이나 신파에 기대어 관객의 감정을 쥐어짜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각자의 우주에서 남몰래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궤적을 따뜻하게 교차시키며, 다름을 마주하는 우리 사회의 성숙도에 대해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
스물일곱 번의 끔찍한 수술을 온몸으로 견뎌낸 열 살 소년 어기에게 바깥세상은 낡은 우주 헬멧의 흠집 난 투명창을 통해서만 간신히 훔쳐볼 수 있는 두려운 공간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남들과는 조금 다른 외모를 가졌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노골적인 시선과 무례한 웅성거림을 감내해야 했던 그는, 모두가 축복하는 크리스마스보다 자신의 얼굴을 완벽하게 숨길 수 있는 핼러윈을 손꼽아 기다리는 소년으로 자라난다. 온 가족의 맹목적인 사랑과 보호막 안에서 홈스쿨링으로만 세상을 배우던 어기에게, 진짜 중학교라는 거친 생태계로의 진입은 잔혹하리만치 차갑고 매서운 통과의례였다. 아니나 다를까, 학교의 문턱을 넘은 첫날부터 그는 기이한 전염병을 옮기는 괴생명체 취급을 받으며 철저한 고립의 섬으로 내몰리게 된다.
특히 부유한 집안의 배경을 등업은 줄리안 일당의 교묘하고도 악의적인 조롱은 어기의 멍든 마음에 날카로운 비수를 꽂는다. 매일 식당에서 홀로 밥을 먹던 외로운 순간, 기적처럼 곁에 다가와 손을 내밀어준 친구 잭 덕분에 잠시나마 평범한 일상의 온기를 맛보는 듯했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가장 안심하고 얼굴을 가린 채 학교를 누비던 핼러윈 날, 자신이 그토록 굳게 믿었던 잭마저 군중심리에 휩쓸려 무리들 사이에서 자신을 저주하는 말을 내뱉는 것을 목격하며 어기의 작은 세상은 차갑게 산산조각 나고 만다.
하지만 이야기는 단지 상처받은 소년의 눈물겨운 비극에 머무르지 않는다. 깊은 상실감에 빠진 어기에게 어떠한 편견의 장막도 없이 다가온 소녀 서머의 맑은 미소, 그리고 자신의 큰 실수를 뼈저리게 뉘우치고 진심 어린 용서를 구하기 위해 줄리안에게 거침없이 주먹을 날리는 잭의 눈부신 성장은 헬멧 속에 웅크려있던 소년을 다시 밝은 세상 밖으로 이끌어낸다. 흥미로운 점은 이 서사가 오직 어기만의 시선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픈 동생을 위해 늘 투명 인간처럼 뒷전으로 밀려나야 했던 누나 비아의 남모를 고독, 교장 선생님의 부탁으로 시작된 관계였지만 결국 진정한 우정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 잭의 혼란, 그리고 비아 가족의 따뜻한 그늘을 동경했던 미란다의 방황까지. 영화는 각자의 자리에서 각기 다른 무게의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다양한 인물들의 내면을 모자이크처럼 정교하게 직조하며, 차갑게 얼어붙었던 이 낯선 세상의 온도를 서서히 훈훈하게 데워나간다.
조용한 눈물- 스크린을 적시던 다정한 시선
어두운 상영관의 푹신한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스크린을 올려다보던 나는,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도무지 주체할 수 없었다. 두껍고 답답한 특수분장이라는 겹겹의 막 너머로 반짝이던 제이콥 트렘블레이의 크고 맑은 눈망울은, 그 어떤 화려하게 세공된 대사보다도 강렬하게 한 영혼의 무해함과 깊은 상처를 동시에 뿜어내며 굳게 닫혀있던 관객의 마음을 속절없이 허물어뜨렸다. 어기가 커다란 우주 헬멧을 쓰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웅성거리는 학교 복도를 위태롭게 걸어갈 때, 주변 아이들의 차가운 발걸음만 클로즈업되던 화면의 압박감과 수족관 속을 거니는 듯 먹먹하게 울려 퍼지던 소음들은 그가 느끼는 숨 막히는 공포를 나의 피부 위로 고스란히 전이시켰다.
내 가슴을 가장 날카롭게 찌르고 들어온 순간은 줄리아 로버츠가 연기한 엄마 이사벨의 시선이었다. 낯선 정문에서 처음으로 헬멧을 벗고 교문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작은 아들의 굽은 뒷모습을 바라보며, "제발 우리 아이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세요"라고 속으로 간절히 기도하며 눈물을 삼키던 그녀의 붉어진 눈시울. 그것은 이 세상 모든 부모의 애끓는 심정을 대변하는 듯해 숨을 쉬기조차 힘들 정도로 가슴 한구석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오웬 윌슨이 분한 아빠 네이트가 짓누르는 듯한 묵직한 공기를 부드럽게 환기시키기 위해 특유의 능청스러운 농담을 던질 때면 옅은 미소가 지어졌지만, 그 유쾌함의 끝에는 언제나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흉터를 덮어주려는 필사적인 사랑의 흔적이 묻어 있어 오히려 더 큰 슬픔과 감동을 자아냈다.
무엇보다 극장의 어둠 속에서 나를 완전히 무장 해제시킨 것은 비아의 고요하고도 짙은 독백이 화면을 채울 때였다. 태양인 동생의 주위를 끊임없이 맴돌아야만 하는 행성의 숙명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도, 돌아가신 할머니와의 바닷가 추억을 홀로 회상하며 소리 없이 눈물을 떨구던 비아의 상실감은 너무나도 현실적이어서 더욱 뼈아팠다. 화면의 곳곳을 부드럽게 감싸 안던 서정적인 어쿠스틱 기타 선율과 오후의 햇살처럼 따뜻한 질감의 조명들은 차갑고 날 선 현실 속에서도 결코 희망의 온기를 잃지 않으려는 인물들의 여린 내면을 섬세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잭과 극적으로 화해한 후 마인크래프트 게임 화면 속에서 두 블록 캐릭터가 함께 펄쩍펄쩍 뛰며 놀 때 터져 나오던 아이들의 티 없는 웃음소리. 그 소리는 극장을 채운 그 어떤 장엄한 오케스트라 사운드보다 더 웅장하게 내 귓가를 맴돌며, 상처로 흉 진 우리의 팍팍한 삶을 치유하는 가장 강력한 마법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아주 작고 평범한 다정함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실감하게 해 주었다.
편견의 민낯- 동화적 환상 이면
하지만 쉴 새 없이 눈물샘을 자극하는 이 아름다운 감동의 서사 이면을 차갑고 이성적인 시선으로 들여다보면, 영화가 구축한 세계가 지나치게 온건하고 동화적인 환상에 빚을 지고 있다는 비판적인 물음을 피해 가기 어렵다. 극 중 어기를 향한 노골적인 혐오와 차별을 주도했던 줄리안의 학교 폭력 문제가 해결되는 방식은 지극히 작위적이고 맥이 빠진다. 엄청난 재력과 이사회의 끈끈한 인맥을 앞세워 뻔뻔한 궤변을 늘어놓는 줄리안의 부모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낳은 천박한 엘리트주의와 이기심의 민낯을 아주 정확하게 짚어냈으나, 그들이 제 발로 스스로 학교를 떠나는 것으로 모든 갈등을 손쉽게 봉합해 버리는 결말은 현실의 지독한 부조리를 외면한 낭만적인 판타지에 불과하다. 실제 우리의 냉혹한 교육 현장에서 가해자가 가진 권력과 자본은 결코 교장의 올곧은 신념 하나에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으며, 소외된 약자들은 스크린 밖에서 훨씬 더 처절하고 지난한 생존의 싸움을 감당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또한, 작품 내내 무한한 포용력과 꿰뚫어 보는 지혜를 보여주는 투쉬 먼 교장이나 브라운 선생님 같은 완벽한 이상형의 조력자들은, 거꾸로 뒤집어 생각해 보면 이러한 훌륭한 어른들의 자애로운 개입 없이는 어기와 같은 소수자가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것조차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우리 사회의 척박한 시스템적 한계를 적나라하게 반증한다. 외모지상주의와 무의식적인 집단 배척이라는 묵직하고 폭력적인 사회적 병폐를 다루면서도, 갈등의 정점을 서둘러 미봉하고 모두가 기립하여 손뼉 치며 환호하는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해피엔딩으로 치닫는 전개는 관객에게 잠시나마 얄팍한 도덕적 위안을 제공할 뿐, 문제의 근본적인 뿌리를 파헤치는 데까지는 한 걸음 나아가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스크린에 새겨 넣은 독보적인 가치는 결코 훼손되지 않는다. 평범한 악의가 어떻게 침묵하는 군중심리를 타고 힘없는 소수자를 무참히 짓밟는지, 그리고 그 질긴 폭력의 사슬을 끊어내는 열쇠는 거창한 영웅적 투쟁이 아니라 서머나 에이머스처럼 위기의 순간에 말없이 옆자리에 앉아주는 용기 있는 방관자들의 작은 행동 변화라는 점을 날카롭게 꼬집는 통찰력. 그것만큼은 혐오가 일상이 되어버린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두고두고 곱씹으며 반성해야 할 매서운 경종임에 틀림없다.
흉터로 가득한 소년이 숨 막히는 헬멧을 벗어던지고 비로소 세상과 온전하게 눈을 맞추기까지의 눈물겨운 여정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기적을 바라기보다 나 스스로 누군가에게 작은 기적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삶의 진리를 설파한다. 타인의 고통 앞에서 너무나 쉽게 눈과 귀를 닫아버리는 삭막한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그리고 다름을 기어이 틀림으로 규정짓고 마는 비좁은 시야에 갇힌 사람들에게 이 아름답고 아픈 서사시를 깊이 권하고 싶다. 스크린이 완전히 암전 된 후, 우리는 스스로의 내면을 향해 뼈아픈 질문 하나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내는 차가운 웅성거림인가, 아니면 기꺼이 곁을 내어주는 따뜻한 다정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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