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1년이 넘도록 일자리를 못 구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요. 영화 《어쩔 수가 없다》는 바로 그 질문을 극단까지 밀어붙입니다. 제가 이 영화의 줄거리를 처음 읽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스릴러인 줄 알았는데, 정작 무서운 건 살인이 아니었거든요.

중산층이라는 유리 바닥이 깨질 때
만수는 25년 경력의 제지 숙련공입니다. 생가를 손수 개조한 단독주택, 아내와 두 아이, 반려견 두 마리. 어느 하나 부족한 것 없이 채워진 삶입니다. 그런데 그 삶이 구조조정(restructuring)이라는 단어 하나로 무너집니다. 여기서 구조조정이란 기업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인력을 감축하거나 사업 부문을 재편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흔히 회사 경영 위기나 인수합병 이후 진행되는데, 이 영화에서는 미국계 자본이 회사를 인수한 직후 단행됩니다.
제가 직접 이런 상황을 겪어본 건 아니지만, 주변에서 비슷한 일을 겪은 분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다들 "석 달이면 된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석 달이 1년이 되고, 1년이 2년이 되면서 사람이 조금씩 달라지더군요. 만수가 13개월째 마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가족에게 "곧 될 것 같다"는 말을 반복하는 장면이 그래서 유독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영화는 중산층의 상징적 자산인 '집'을 축으로 이야기를 끌고 갑니다. 은행 채무 독촉, 집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 그 집을 보러 온 친구가 아내에게 추파를 던지는 장면까지. 제 경험상 이 부분이 오히려 살인 장면보다 더 서늘하게 다가왔습니다. 누군가의 품위가 무너지는 건 총소리가 아니라 이런 일상의 균열에서 시작되니까요.
핵심 분석: '어쩔 수가 없다'는 자기 합리화의 구조
만수가 경쟁자 세 명을 제거하기로 결심하는 논리는 기묘하게도 합리적입니다. 허위 구인공고를 내 경쟁자들의 이력서를 모으고, 자신보다 뛰어난 지원자를 제거해 자리를 만든다는 계획입니다. 이걸 영화에서는 웃기게 그리지만, 제가 보기엔 신자유주의적 경쟁 논리를 극단까지 확장한 풍자입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만수가 살인 직전마다 반복하는 자기 암시(self-suggestion) 장면입니다. 자기 암시란 특정 생각이나 말을 반복함으로써 스스로의 감정과 행동을 유도하는 심리 기제를 말합니다. 영화 초반 해고자 교육에서 강사가 시키는 긍정적 자기 암시와, 살인 직전 만수가 "어쩔 수가 없다"를 되뇌는 장면이 같은 구조로 연결됩니다. 쉽게 말해, 개인의 심리적 생존 도구가 도덕적 마비 도구로 전환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셈입니다.
아내 미리가 남편의 범행을 눈치채고도 "집을 위해 지지하겠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제가 직접 이 부분을 읽으며 가장 오래 멈춰있었던 대목입니다. 가족 공동체가 외부의 위협 앞에서 보편적 윤리를 포기하는 순간,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공모(共謀)가 됩니다. 이 공모 구조가 이 영화를 단순한 범죄 스릴러와 구별되게 만드는 지점입니다.
만수가 9년간 유지하던 금주를 깨는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는 이 장면을 통해 그가 지켜온 마지막 자기 통제가 붕괴되는 순간을 보여줍니다. 그 직후 펜치로 자신의 충치를 직접 뽑아버리는 행동은 과장된 연출처럼 보이지만, 재취업이라는 목적을 위해 스스로를 파괴하는 현대인의 자화상으로 읽힙니다.
만수의 비극에서 반복되는 핵심 패턴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사회적 자존감 붕괴: 25년 경력이 단 하루의 통보로 무효화됨
- 심리적 합리화: "어쩔 수가 없다"는 주문으로 죄책감을 마비시킴
- 가족 공모: 개인의 일탈이 가족 단위의 생존 전략으로 승인됨
- 자기 파괴: 금주 포기, 치아 발치 등 자기 훼손을 통한 목적 달성
이 구조는 만수 개인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고용불안(job insecurity)이 장기화될 때 개인의 심리가 어떻게 재편되는지를 보여주는 사회적 진단에 가깝습니다. 고용불안이란 자신의 일자리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지속적인 불안 상태를 뜻하며, 한국노동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50대 이상 중장년 실직자의 재취업 소요 기간은 평균 11개월을 넘습니다(출처: 한국노동연구원). 만수의 13개월은 그러니까 통계적으로도 현실적인 숫자입니다.
자동화 시대의 전망: 인간의 자리는 어디에 있는가
영화의 결말은 예상보다 훨씬 냉정합니다. 만수는 살인까지 저질러 문 제지에 재취업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런데 그가 들어선 공장에는 인간 노동자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의 공정이 자동화(automation)되어 있습니다. 자동화란 사람이 수행하던 작업을 기계나 소프트웨어가 대신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뜻하며, 제조업 분야에서는 산업용 로봇과 AI 기반 공정 제어 시스템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만수가 초반에 "노동자를 자르는 것은 도끼로 목을 날리는 것과 같다"라고 연설하던 장면이, 결말에서 기계가 나무를 자르는 장면과 겹쳐지는 수미상관 구조는 영화에서 가장 잔인한 연출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구조적 아이러니는 글로 설명하는 것보다 영상으로 보는 순간 훨씬 강하게 꽂힙니다. 만수는 경쟁자를 모두 제거하고 '인간의 자리'를 쟁취했지만, 시스템은 이미 인간의 자리를 지우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7년까지 전 세계에서 약 8,300만 개의 일자리가 자동화로 대체될 것으로 전망됩니다(출처: 세계경제포럼). 제지 산업처럼 정형화된 제조 공정일수록 자동화 속도는 더 빠릅니다. 영화는 이 현실을 만수의 환호성으로 마무리합니다. 재취업에 성공한 기쁨의 포효인지, 기계 속에 홀로 남겨진 인간의 비명인지 구분이 안 되는 그 장면이 계속 머릿속에 남습니다.
《어쩔 수가 없다》가 무서운 건 만수가 살인마라서가 아닙니다. 그의 선택이 이상하리만치 이해가 된다는 점, 그리고 그 이해가 결국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가리키고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만수가 아니다"라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저는 그게 더 궁금해졌습니다.
만약 이 영화가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그 불편함이 어디서 오는지 한 번쯤 들여다보시길 권합니다. 그게 이 영화가 던지는 진짜 질문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일 것입니다.
참고: https://namu.wiki/w/%EC%96% B4% EC% A9%94% EC%88%98% EA% B0%80% EC%97%86% EB% 8B% A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