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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성시 (침묵의 언어, 롱테이크 미학, 2.28 사건)

by 짙은눈썹 2026. 4. 28.

영화 '비정성시'는 1990년 01월 26일 개봉한 영화입니다.

 

역사를 가장 정직하게 기록하는 방법이 '말하지 않는 것'이라면, 당신은 믿겠습니까. 처음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장장 2시간 37분 동안 카메라는 인물들에게 좀처럼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고, 주인공은 말도 못 하고 듣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영화가 제게는 가장 많은 말을 건넸습니다.

26년 5월 재개봉 포스터

 

침묵의 언어: 문청이라는 인물이 들고 있는 것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1989년작 비정성시에서 막내 문청은 청각장애인입니다. 직업은 사진사입니다. 그는 말 대신 글을 쓰고, 소리 대신 렌즈로 세상을 읽습니다. 처음에는 이 설정이 단순한 서사적 장치처럼 보였는데, 보면 볼수록 이게 이 영화의 핵심 구조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영화 비평 이론에서 '결핍의 서사'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결핍의 서사란, 인물이 가진 신체적·언어적 한계를 통해 오히려 시대의 억압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기법을 의미합니다. 문청이 듣지 못한다는 사실은 1940년대 대만 민중이 처했던 상황, 즉 말해도 들리지 않고 외쳐도 기록되지 않던 시대를 정확하게 은유합니다. 제가 이 장면들을 되새기며 특히 인상 깊었던 건, 문청이 자신은 듣지 못하는 음악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틀어주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음악을 들은 관비가 조용히 그 곡에 얽힌 사연을 글로 써서 문청에게 건넵니다. 이 장면 하나가 저는 이 영화 전체를 압축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받지 못하는 것을 주고, 전하지 못하는 것을 적는 행위, 그게 결국 이 영화가 말하는 '버티는 삶'의 방식이니까요.

영화에서 문청이 사용하는 필담(筆談), 그러니까 글로 나누는 대화는 단순히 청각장애인의 소통 수단이 아닙니다. 당시 대만에서는 언어 자체가 정치적 도구였습니다. 일본어를 쓰느냐 북경어를 쓰느냐가 '적'과 '아군'을 구분하는 기준이었고, 극 중에서도 청년들이 일본어로 질문해 대답하지 못하는 자를 구타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말을 못 하는 문청은 역설적으로 이 언어폭력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운 인물입니다. 그 아이러니가 섬뜩할 정도로 날카롭습니다.

롱테이크 미학: 왜 카메라는 다가오지 않는가

이 영화를 두고 흔히 '예술영화의 교과서'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 표현이 절반만 맞다고 생각합니다. 교과서라는 말은 어딘가 차갑고 학습의 대상처럼 느껴지는데, 비정성시는 그런 종류의 영화가 아닙니다. 보는 내내 불편하고 답답하고, 어떤 장면에서는 화가 날 정도입니다. 그게 의도된 설계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죠.

롱테이크(Long Take)란 편집 없이 하나의 장면을 길게 촬영하는 기법입니다. 허우 샤오시엔은 이 롱테이크를 극단적으로 밀고 나갑니다. 카메라는 인물의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에도 클로즈업으로 달려들지 않습니다. 대신 먼 거리에서 고정된 채 그 장면을 그저 바라봅니다. 학술적으로는 이를 미장센(Mise-en-scène) 중심의 연출이라고 부릅니다.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되는 인물, 배경, 조명, 동선 등 모든 시각적 요소를 총칭하는 영화 용어입니다. 허우 샤오시엔은 편집의 리듬 대신 공간 안에 쌓이는 시간의 무게로 감정을 전달합니다.

제가 이 연출 방식에서 가장 충격을 받은 부분은 2.28 사건, 즉 1947년 대만 민중 봉기와 그에 따른 국민당 정부의 대규모 학살을 다루는 장면이었습니다. 영화는 이 참사를 직접 보여주지 않습니다. 병원으로 실려 들어오는 부상자들, 폭죽 소리와 겹치는 가족의 비명,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계엄 선포. 관객은 사건의 전모를 보지 못한 채 그 여파만을 목격합니다. 이 방식에 대해 역사적 구체성이 결여됐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가해자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으면 자칫 역사적 폭력이 숙명론적인 불운으로 희석될 수 있다는 우려를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출이 옳다고 결론을 바꾼 이유가 있습니다. 역사의 피해자들 대부분은 사건의 전모를 알지 못한 채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목격한 것은 총성이 아니라 피투성이로 돌아온 가족이었고, 정치 선언이 아니라 갑자기 사라진 이웃이었습니다. 카메라가 멀찍이 서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대만 국립중앙대학교의 영화 연구에 따르면 비정성시는 대만 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2.28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출처: 대만 국립중앙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센터). 1989년 개봉 당시 이 영화는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으며, 이는 대만 영화로는 최초의 성취였습니다(출처: 베니스 국제영화제).

2.28 사건: 역사의 단면을 잘라보면 보이는 것

비정성시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2.28 사건의 맥락을 알아야 합니다. 1945년 일본의 패전으로 대만은 중화민국 국민당 정부의 통치 아래 놓입니다. 그런데 본토에서 온 국민당 관리들은 대만 주민들을 일제에 협력한 집단으로 취급했고, 경제적 착취와 부패가 극에 달했습니다. 1947년 2월 28일, 한 노점상 여성을 단속 과정에서 구타하는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전섬적인 민중 봉기가 일어납니다. 국민당 정부는 본토에서 군대를 증원해 무력으로 진압했고, 이 과정에서 대만 지식인·엘리트 계층을 포함한 수만 명이 학살됩니다.

이 사건이 영화에서 중요한 이유는 임 씨 가문 사형제의 삶이 이 역사적 격변과 정확하게 맞물려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핵심 구도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일본 패전으로 탄생하는 새 생명과 해방의 기쁨
  • 2.28 사건으로 무너지는 가족과 공동체
  • 그럼에도 계속되는 식사, 출산, 가족사진

이 세 겹의 구조가 영화 전체에 걸쳐 반복됩니다. 역사적 사건은 배경이 아니라 인물들의 몸에 직접 새겨집니다. 문양은 일본군 포로로 잡혀갔다 돌아와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앓고, 아내를 적으로 오해해 죽이려 합니다. 여기서 PTSD란 극도의 충격적 경험 이후 반복적인 공포와 인지 왜곡이 지속되는 정신건강 상태를 말합니다. 문양이 고문 이후 완전히 정신을 잃고 어린아이처럼 제사 음식을 집어먹는 장면은, 그 사람이 얼마나 철저하게 부서졌는지를 말이 아닌 몸으로 보여줍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생각했던 장면은 마지막 가족사진입니다. 천과 관이 아이와 함께 찍는 그 사진. 그 사진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문청이 체포될 것이라는 걸 관객은 압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순간, 그냥 사진을 찍습니다. 웃으면서. 역사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사람들은 그렇게 버팁니다. 거창한 구호 없이, 그냥 오늘의 밥을 먹고 아이를 안고 사진을 찍으면서요.

비정성시는 쉬운 영화가 아닙니다. 진입장벽이 높다는 비판을 저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답답함을 견디고 나면, 이 영화가 왜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있는 작품인지 이해하게 됩니다. 역사적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한 번쯤 대만 현대사를 짧게라도 훑어보고 나서 보시길 권합니다. 그러면 임 씨 가문의 이야기가 어느 순간 우리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묵묵히, 그렇게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참고: https://youtu.be/7_VbczZPw8 o? si=7 dWhqquJ3 JKtih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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